김훈 작 남한산성 46쪽이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송파 나루 뱃사공의 목을 베었다. 사공은 청나라 병사들을 나룻배로 건너주고 쌀을 받았다. 조선 왕 인조는 뱃사공의 배로 백성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도망치면서도 고맙다는 말조차 없었다. 김상헌은 자신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가자는 말을 거부하고 어린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겠다는 뱃사공을 베었다. 뱃사공 아니면 얼음 강물에 빠져죽었을 인간이 수만 청병을 거부하지 않았다고 자신을 건너준 은인을 죽였으니 청국 신하의 발치에 엎드려 아픈 흉내로 만고 절의를 보이는 짓쯤은 당연하다.
친일인명사전을 김구의 제단에 바친다. 일제 식민기에는 감히 견주지도 못하던 27세 만주군 중위와 비교하는 짓을 김구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김구도 기억하지 못한 친일을 후학이 기록했으니 정치적인 음모라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살지 않았음을 행운으로 삼는 자들이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매도하면서 독립투사나 된 것처럼 날뛴다. 뱃사공의 실존적 삶을 베는 김상헌 따위 양반의 더러운 허무주의다. 문신이 무신을 능멸하던 고약한 심뽀다. 6.25 때 도망갔던 도강파가 잔류파를 부역자라고 처형하던 뒤틀린 잔인함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 소년이다. 추석 전날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다른 집은 떡 하고, 전 부치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하지만 추석 지낼 돈이 없는 집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소년의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나이 많은 형수가 뜰 앞에서 감을 하나 따서 내민다. 소년이 추석에 먹은 유일한 음식이었다. 평생 가난의 한을 안고 산 소년이 선택할 인생이 무엇이었을까? 돈 많은 장준하처럼 5만 명이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식민지에서, 일제에 굽실거린 더러운 돈이 독립 군자금으로 둔갑하는 시대에 일개 시골 소년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국비 사범학교나 군관학교는 친일이니 가지 말까? 억지로 결혼한 연상의 아내를 부양하며 무지랭이 촌놈으로 늙어야 하는 걸까? 학교에선 매일 지겨운 식민 교육을 반복하는데 교사 아닌 다른 길을 찾으면 안 되는 걸까? 교사는 몰락한 동학 접주 손자의 출세의 한계였을까? 내선일체, 황국신민을 길러내는 교사가 만주군 중위보다는 덜 친일적이니 교사직을 계속해도 되지 않았을까? 혹시라도 나중에 대통령이 될 것을 생각해서라도 교사에서 그쳤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 몇 년 뒤에는 반드시 해방될 것이라고 알려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김일성과 좌파는 친일청산의 자격이 없다. 6.25 동란을 일으켜 전범국가 일본을 부흥시킨 한민족 최대의 친일파 김일성이야말로 겨레의 이름으로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 피 식민국의 불행을 이용해 살아난 식민 지배국 일본은 한반도 통일을 방해하는 역학구도로 작용한다. 김일성의 친일청산도 거짓말이다. 김일성 정권 수립에는 수많은 친일파 뿐 아니라 일본인이 직접 참여했다. 대한민국에선 미군정이 일제 관리 경력의 행정 요원을 필요했을 뿐이고, 소련의 괴뢰 김일성 정권에서는 친일 행정 요원의 역할을 소련 군인들이 대신했을 뿐이다.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말이 있다. 제발 저린 도둑도 위기에 몰리면 반격한다. 간교한 도둑의 이념이 의적의 신념으로 둔갑하면 안하무인이 된다. ‘좌파는 항일했다’는 거짓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신들의 좌파 경력을 말하면 색깔론이라고 발악하면서, 상대의 사소한 친일의 경력은 호시탐탐 선제 공격의 기회로 만든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청년장교 박정희의 몇백배의 영향력을 지닌 자칭 민족지도자 여운형의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좌익이라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외면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좌파의 친일 행적을 감추려는 이념적 선제 공격이다.
가짜 친일 청산파의 신념은 염치조차 잃는다. 독립투사를 체포하던 만주국 경찰 특무 아버지를 감추거나, 광복군 장군을 할아버지라고 속인다. 헌병 오장 아버지가 부끄러운 친일 청산파 여당 대표는 사임하지만, 만주군 중위를 친일파로 만든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보다 악독한 헌병 오장은 알아서 친일파에서 뺀다. 초록은 동색이니 본명 임준열(필명 임헌영)의 화려한 좌익 경력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친일 청산 이념으로 선제 공격하려는 가짜 독립 투사 후손과 좌파 경력 집단에게 사고의 균형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사치가 아니겠는가?
박정희의 몇 백배 영향력을 가졌던 좌파 친일파 두목인 여운형의 친일은 빼고, 코딱지 만한 우파의 친일은 죄다 집어넣는 만용은 염치조차 잃은 이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다. 망국이 외면했던 어두운 삶을 이겨내려는 시골 소년의 집념을 친일로 단죄하도록 방치한 대한민국의 빈약한 정신사는 아마도 오랫동안 부끄러워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는 비뚤어진 부적응 집단에 의해 거짓 독립운동가 후손과 열혈 좌파, 그들끼리 강행한 자칭 친일인명사전이 몇년 뒤 고물상의 폐휴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 부끄럽지만, 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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